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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이의 일상/북스토리

"이 책 안 사면 민족반역자로... 하하하"...."두어른"

"이 책 안 사면 민족반역자로...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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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전구매하기] '백발의 거리 투사' 백기완 선생님과 '길 위의 신부' 문정현 신부님이 공동 저자로 나서서 <두 어른>이란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책 수익금은 비정규노동자들이 '꿀잠'을 잘 수 있는 쉼터를 만드는 데 보탭니다. 사전 구매하실 분은 기사 하단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편집자말]




"우리가 군사독재 시절 데모하고 사는 동안에 나라가 커지고 한류도 흘러가고 있죠. 이게 민주화운동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민주화운동 속에서 키워온 역량이 다른 한편에서 나타난 거라고 생각해요. 


지난 31일에 한국과 이란 축구경기를 보러 갔어요. 맨날 바쁘다면서 왜 거기에 갔느냐는 말도 들었어요. 

그러나 사실 저는 축구를 보러간 게 아니라 응원하는 젊은이들을 보러 갔죠. 그걸 느끼고 싶었어요. 지난겨울 

촛불 혁명은 6월 항쟁과 붉은악마가 합쳐진 겁니다. 


인류 역사상에는 없는 이 환상적인 무혈혁명은 이런 민중의 역량 속에서 가능했지요. 87년 6월 항쟁은 죽음을 무릅쓰고, 자기를 죽여가면서 한 겁니다. 붉은악마의 응원은 우리 민족혼이 불러낸 거죠. 후세에 촛불 혁명을 가르칠 때에는 이런 역사적 흐름 속에서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역사를 한반도의 사건사고사로 가르치고 있어요. 

세계사 속에서, 강대국 간섭을 받으면서 한반도가 어떻게 자기 운명을 결정해 왔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고려시대에 거란족이 쳐들어왔을 때 서희 장군과 강감찬 장군이 물리쳤다고 기록하는 건 사건사고사입니다. 

이 전쟁에서 실패한 뒤 거란은 망했습니다. 청나라는 왜 조선에 쳐들어와서 인조를 항복시키고 인질만 데리고 돌아가? 그 때 청나라는 조선을 무장 해제시키고 식민 지배를 할 수 있었는데 그냥 돌아가지 않았나요? 몽골족은 자기가 지배한 나라는 칭기즈 칸이 통치했습니다. 그러나 고려는 충렬왕, 충선왕 등 고려왕조를 이어갔지요. 27년 피눈물 나는 백성들의 항쟁으로 이뤄낸 결실이죠. 원나라 청나라가 우리나라와 싸워 이길 수는 있어도 지배할 수는 없었던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힘이 우리의 역사적 저력입니다.

사건사고사로 보면 우린 패배자이지만 세계사 전체로 보면 인류 역사상 없었던 깡패나라조차 우리 운명을 통치하는 

권한을 빼앗지 못했습니다. 우린 한자 문명권으로 들어온 이래로 중국 신세를 많이 졌죠. 라이샤워가 쓴 <동양문화사>

를 보면 '유교를 만든 건 중국이지만 이상적 유교 국가를 건설한 것은 조선이었다'고 평가합니다.  

반성할 것도 있습니다. 19세기 올 때까지 우리는 중국 문명의 신세를 졌기에 새로운 문명과 기술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죠. 중국이 새로 무엇을 만들면 그것을 벤치마크해 우리 것으로 만들면서 문명에 낙오되지 않았어요. 

2등의 행복이랄까. 중국이 청자를 만들자 이를 본받아 고려청자를 만들었죠. 그리고 이것을 더 개발해서 상감청자를 

만들었어요. 그런 변형과 활용엔 천재적인 기량이 있었어요. 핸드폰, 텔레비전을 누가 발명했건 그것을 질 좋고 값싸게 만드는 것은 우리나라잖아요.  

하지만 우리 민족은 창조하는 자, 1등의 저력을 갖추지 못했죠. 고유기술이 없다는 거죠. 노벨과학상 받은 사람도 없어요. 일등은 기술만 갖고는 안 됩니다. 핸드폰을 만들면서 이걸 어떻게 해야 소비자가 좋아할까를 다루는 것은 제어계측 전자공학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인류학, 심리학, 민속학 등 인문학의 문제죠." 




"지구상에는 항상 강자가 있었죠. 강자는 약자를 침략해서 잡아먹었어요. 그런데 강자로 누리던 동아시아의 흉노족, 탁발씨, 거란족 등은 지구상에서 사라졌지요. 그런데 조선족은 지금까지 살아남았어요. 박정희가 유신 헌법을 들고 나왔을 때 세계 지성들은 '이제 한국은 끝났다'고 했어요. 대들다가 걸리면 5년 이상 사형에 처한다고 했죠. 그런데도 이에 굴하지 않고 데모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어요. 

이때 우리에게 힘이 됐던 건 '재야'입니다. 다른 나라에는 재야라는 개념이 없어요. 조선 시대에도 재야 개념이 있었죠. 그땐 '산림(山林)'이라고 했어요. 높은 지성들이 출세하지 않고 은거하면서 제자들을 키웠던, 우암 송시열이나 남명 조식 선생 같은. 출세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 공부하는 어른이 존재하는 그런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 뿌리가 박정희 시대를 경과하면서 재야가 되었습니다.   

60년대에는 함석헌, 장준하 선생이 재야였어요. 70년대 들어와서 백기완 선생이 합류했습니다. 1975년에 재야 단체라는 것은 사실상 백 선생님이 내건 '백범사상 연구소',  오늘날의 '통일문제연구소'밖에 없었어요. 백 선생님은 재야를 지키면서 재야를 세력화했습니다. 나중에 이 분이 대통령 후보로 나선 것은 대통령이 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재야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재야는 민주화 과정에서 우리의 삶의 가치와 도덕, 민주의 가치를 지킨 정신 지도자입니다. 그 재야 인사 중에서 독보적인 인사가 함석헌, 장준하, 백기완, 계훈제입니다. 한편으로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양심적인 신부와 목사가 있었죠. 박형규, 강원룡 목사와 유신헌법을 반대했던 법정 스님도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 양심적인 종교인과 학자들을 재야로 끌어낸 데에는 백기완 선생님의 혁혁한 공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온 김수환 추기경은 가톨릭계의 큰 행복이었죠. 지학순 주교와 박형규 목사가 보여준 모습은 대단했습니다. 그 뒤에 문익환, 문동환 목사가 있었고 문정현, 문규현, 함세웅 신부가 잇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종교인들은 '하느님 빽'이 있었어요. 그런 빽이 없었던 게 백기완 선생님이었습니다. 민족혼으로 밀고나간 거죠. 거기에 백 선생님은 재야 어른 중에서 확고한 위상이 있었습니다. 엄혹했던 시절 그분이 없는 집회는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경험을 분리해 생각하기 쉬운데 백 선생님은 한 몸에 담고 사셨습니다. 고맙고 존경스럽죠."



 


"백기완 선생과는 오래 됐지. 내가 대학생 시절이었으니까. 그때부터 백 선생님은 학생운동하는 젊은이들과 친하게 지냈죠. 저는 3학년 때 3선 개헌 반대를 했다고 무기정학을 당했어요. 74년에 백기완 선생이 긴급조치 1호로 들어가고, 나는 뒤이어 긴급조치 4호로 들어갔어요. 저보다 먼저 감옥에서 나온 백 선생님은 내 친구를 통해 상업학교를 나온 제 여동생을 백범사상연구소 직원으로 썼어요. 유지연이라고 해요. 백선생님 왈, 백범사상연구소에서 월급을 주는 첫 번째 정식 직원이었다고 했어요.


감옥에서 나온 뒤 나는 취직할 데도 없었고 형사는 그런 제 동향보고를 했습니다. 그때 자장면 한 그릇 사 준 사람은 백 선생님밖에 없었어요. 취직도 시켜줬죠. 금성출판사 편집장인 강민 시인이 백 선생님 친구였는데, '이놈이 6남매의 장남인데 감옥에서 나와서 먹고살아야 하니까 데리고 가라'고 했어요. 저에게는 가족 같고 아버지 같은 분이죠.

백기완 선생님 댁이 퇴계로 5가에 있을 때, 설날이면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어요. 어느 해인가, 밥상이 푸짐했어요. '내 친구가 갈비 한 짝 보내서 떡국에 고기를 넣었어'라고 말하면서 기분 좋게 웃던 모습이 선합니다. 리영희 선생님 집에도 세배꾼들이 들끓었는데, 문인들의 종점(저녁을 먹는 곳)은 리영희 선생 댁이었고, 주로 젊은 학생들의 종점은 백 선생님이었어요. 이게 재야의 풍경이자 인간미였습니다.  

선생님 댁에 세배 가기가 부끄러워질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소신으로 미술평론을 밀고나갔지만, 험난한 시절에 한 사람이 귀했습니다. 함께하자는 손길을 어쩔 수 없이 뿌리쳤을 때 큰 빚을 진 것처럼 찾아뵙기도 죄송스러웠죠. 그럴 때 나를 감싸주시고, 다독여주셨습니다. 선생님 주변에는 사람들이 들끓었어요. 지금도 주변에 수많은 '딴따라'들이 있잖아요. 마음이 항상 젊어서 젊은 아이들과 잘 노십니다. 하-하-."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리하여 너도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노나메기를 만들자는 바랄(꿈)이다.
하지만 그 꿈은 제 손으로 일구질 않으면
그 꿈을 꾸던 놈이 죽는다는 아, 그 실천적 명제, 바랄
그것을 깨우쳐야 하는 거야. 알가서.
이 뺑뺑이처럼 돈의 굴레만 뱅글뱅글 맴만 도는 것들아."
(백기완. <두 어른> 책 102쪽)

"더 많이 거둔 이도 남지 않고
더 적게 거둔 이도 모자라지 않는

저마다 먹을 만큼 거두어들이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어."
(문정현. <두 어른> 책 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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